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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7 - 국내 SW 기업의 약진과 숨바꼭질의 시작 (5) 2009/10/13
  2.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2 - 소프트웨어 강국의 기반 (1) 2009/09/23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10/13 14:47
지난 회까지 한국 소프트웨어의 성장사를 주욱 살펴봤는데요. 그동안 기업들이 커 나가는 과정만 지켜봤다면 이제는 성공한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된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국내의 대표적인 SW 기업의 성장과 제도 단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SW 매출 100억 기업 탄생과 SPC의 출범

이와 같은 SW 보호를 통해 본격적인 벤처기업 신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100억 클럽에 가입한 기업은 국내의 대표적인 SW 기업인 한글과컴퓨터였죠. 한글과컴퓨터는 회사 설립 4년 만인 1993년 103억 원의 매출을 기록, 제 1호 매출 100억 기업으로 기록됐습니다. 동시에 한글과컴퓨터는 최단 기간에 100억 원 매출을 돌파한 기업이기도 하고요.

한글과컴퓨터의 100억 돌파와 함께 1993년은 SW 산업의 역사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1993년 ‘소프트웨어저작권보호위원회’라는 이름으로 SPC의 모태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당시 회원사는 30여 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시스템즈 등의 외산 업체와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 등의 국산 업체를 포함해 120여 개의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죠.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1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SW 기업은 핸디소프트입니다. 1996년 129억 원의 매출을 기록, 회사 설립 6년 만에 100억 원 고지를 돌파했습니다. 3호 기업은 안철수연구소가 기록했는데, 안철수연구소는 1999년 131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보안업계 최초로 100억 클럽에 가입한 기업입니다. 1990년대까지 국내에서 100억 원 고지를 넘은 기업은 한글과컴퓨터, 핸디소프트, 안철수연구소 3개 사에 불과했죠.

핸디소프트는 얼마 전 오리엔탈리소스로 사실상 전격 매각되었습니다. CI 출처는 핸디소프트 홈페이지


뿌리 깊은 불법복제와 단속의 숨바꼭질

법제도 정비와 단속을 통해 SW 기업들이 뿌리를 내렸으나 단속이 약화되면서 불법복제는 되살아났습니다. 1999년 다시 검찰의 대대적인 불법복제 단속이 시작되었고 5월에는 불법복제에 대한 첫 집단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죠. 마이크로소프트, 시만텍, 안철수연구소, 한글과컴퓨터, 트렌드마이크로 등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의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10개 사가 서울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SW 정품 구입 바람이 정부, 대학 연구소, 민간기업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긴급 예산을 확보, 정품 SW 구입에 나섰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소들은 3,000만~2억 원대의 긴급 예산을 편성하여 정품 SW를 구입했고요. 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전문용 SW의 경우 관련 업체와 협의를 거쳐 일단 정품을 공급 받아 사용한 뒤 차후에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구입 대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국내 10대 그룹의 평균 컴퓨터 프로그램 불법복제 사용률이 14%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지검 지적재산권 침해 사범 합동수사본부가 1999년 4월 한 달 동안 일제 단속을 벌인 결과 불법복제한 SW를 업무용으로 사용해 온 대기업 관계자 등 총 406명을 적발, 이 중 45명을 구속하고 258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검찰이 단속한 기관들을 대상으로 국내외 컴퓨터 SW 개발업체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랐습니다.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외 5개 SW 개발업체들이 검찰 단속에 적발된 부산의 성심외국어대, 부산 경상대, 한국전력과 인쇄업체 한 곳을 상대로 모두 6억 원 가량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저작권 침해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는데, SW 개발업체들이 대학과 공기업을 상대로 불법복제 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죠.

이를 통해 SW 불법복제의 성역이 없어졌습니다. 정부의 이 같은 단속 의지는 SW 불법복제 때문에 국내 유망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경영 위기에 봉착하는 등 불법복제가 한계 상황에 달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적재산권 침해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강력한 대처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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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내영아 2009/10/13 21:3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불법복제 참회합니다. ㅠ.ㅠ

  2. 컴퓨터공학과 학생 2010/07/02 02: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컴퓨터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장차 SW/ DBMS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있는데... 불법복제가 제발 근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3. swiss replica watches 2010/07/08 17: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 1호 매출 100억 기업으로 기록됐습니다?동시에 한글과컴퓨터는 최단 기간에 100억 원 매출을 돌파한 기업이기도 하고요?

  4. IT news 2011/02/08 07: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09/23 18:55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는 세계로부터 ‘IT 강국’이라는 화려한 수사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은 이내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IT강국’의 동력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IT 강국 저 뒤편에 가려진 소프트웨어 산업의 취약성이 그 주요한 원인입니다. 우리는 40여년에 달하는 IT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세계적으로 걸출한 개발 역사가 빛나고 있으며, IT 강국으로 불릴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풍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나라 초창기 IT 역사를 통찰하고, 마치 끈질긴 우리 민족성처럼 자생해 온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1부 - 최빈국과 최첨단 IT의 숙명적 만남에 이어 2부 - 소프트웨어 강국의 기반을 연재하겠습니다.


IT 인력 양성으로 IT 산업 토양 마련


1960~1970년대 컴퓨터 도입은 역사적으로 업무 전산화라는 컴퓨터 본연의 임무로 전방위적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더 큰 역사적 의미는 수많은 IT 인력을 배출해냈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으로써 IT 산업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IT 산업을 이끌어온 인력 산실의 시원을 찾아보면 바로 초창기 컴퓨터 도입과 연결됩니다. 1967년 FACOM222를 도입한 한국생산성본부 산하의 전자계산소(KCC)와 같은 해에 발족한 KIST 전자계산실(후에 시스템공학연구소가 됩니다)은 우리나라 IT 인력 배출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으며, 그 밖에 IBM1401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및 육군본부 등이 IT 인력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1969년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CDC-3300 기종을 임대한 KIST 전자계산실의 역할은 지대했습니다. 체신부의 EDPS부터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주요 공공업무의 전산화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고급 전산 인력을 배출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KIST는 아름다운 전경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출처는 KIST 홈페이지


이와 함께 대학들의 컴퓨터 도입도 활발했습니다. 이는 젊은 인재 양성의 기반이 되어 1880년대 중반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왕성한 개척시대를 열어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첫 컴퓨터 도입 사례로는 1969년 유니백 기종을 들여온 서강대가 최초이며, 이어 1960년대에 연세대, 한양대, 숭실대가, 1970년대에는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광운대, 홍익대 등이 그 뒤를 잇습니다. 대학들의 컴퓨터 도입은 전산 인력을 양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며, 마침내 숭실대는 1970년 공과대학 내에 국내 첫 전자계산학과를 개설합니다.


컴퓨터 활용 능력이 IT 산업을 일구다

1960~1970년대의 컴퓨터 도입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컴퓨터 도입 대수는 1969년 17대, 1971년 36대, 1973년 66대에 이어 1975년에는 129대까지 증가합니다. (그래봐야 요즘 PC방 하나 크기만 못하군요;;)


요즘 유행하는 대륙의 PC방 샷 하나 중국서 퍼 옵니다-_-; 무려 1777석이라는군요.


여하튼 초창기 정부 및 공공기관이 주도한 컴퓨터 도입은 금융기관과 교육기관으로 이어졌고, 1970년대 중반에는 본격적으로 민간기업까지 확산됩니다.

민간기업의 전산화 바람은 곧 우리나라 IT 산업의 태동을 의미합니다. 초창기 컴퓨터 활용 인력들이 삼보컴퓨터나 큐닉스컴퓨터 등 컴퓨터 업체를 설립했는가 하면, 1980년대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1986년 기준 과학기술처(현재 교육과학기술부) 등록 소프트웨어 309개 사를 분석해보면, 70% 이상이 1980년 이후 설립되었죠.

1980년 이후 해마다 20~30여 업체가 설립됐으며, 이 무렵 대기업들은 전산실을 통해 대형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를 설립하는 붐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삼미전산(1983년 삼미그룹), 쌍용컴퓨터(1971년 설립한 우신정보시스템), 유니온시스템(1984년 조선공사) 등을 비롯 1985년 금성소프트웨어와 삼성데이타시스템 등이 이 무렵 설립된 대표적인 대형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들입니다.

중견 그룹들도 소프트웨어 계열사 설립에 나서기 시작하는데 정우개발, 대한해운그룹, 동일, 삼일회계법인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 그룹전산실 출신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향후 SI 사업으로 발전했으며, 1970년대 국내 건설업계가 중동 붐을 일으켰듯이, 오늘날 풍부한 IT 활용 경험과 능력으로 세계 IT 서비스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980년대는 무엇보다도 전문기술을 보유한 젊은 인재들이 대거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들어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과잉의욕, 경영미숙, 일감부족 등으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가장 값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용역이나 외산 대리점 역할에 치중했던 대다수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과는 달리 국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스타 벤처인들이 탄생함으로써 수많은 청년들을 IT 산업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SPC 협회보 'SW 저작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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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Information Technology Magazine 2011/02/08 0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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