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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7 - 국내 SW 기업의 약진과 숨바꼭질의 시작 (5) 2009/10/13
  2.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5 - SW 불법복제와의 본격 전쟁 (1) 2009/10/05
  3.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4 - 나모 웹에디터와 불법복제의 범람 (10) 2009/09/28
  4.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 3 - 국산 컴퓨터에서 아래아한글까지 (6) 2009/09/24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10/13 14:47
지난 회까지 한국 소프트웨어의 성장사를 주욱 살펴봤는데요. 그동안 기업들이 커 나가는 과정만 지켜봤다면 이제는 성공한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된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국내의 대표적인 SW 기업의 성장과 제도 단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SW 매출 100억 기업 탄생과 SPC의 출범

이와 같은 SW 보호를 통해 본격적인 벤처기업 신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100억 클럽에 가입한 기업은 국내의 대표적인 SW 기업인 한글과컴퓨터였죠. 한글과컴퓨터는 회사 설립 4년 만인 1993년 103억 원의 매출을 기록, 제 1호 매출 100억 기업으로 기록됐습니다. 동시에 한글과컴퓨터는 최단 기간에 100억 원 매출을 돌파한 기업이기도 하고요.

한글과컴퓨터의 100억 돌파와 함께 1993년은 SW 산업의 역사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1993년 ‘소프트웨어저작권보호위원회’라는 이름으로 SPC의 모태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당시 회원사는 30여 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시스템즈 등의 외산 업체와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 등의 국산 업체를 포함해 120여 개의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죠.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1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SW 기업은 핸디소프트입니다. 1996년 129억 원의 매출을 기록, 회사 설립 6년 만에 100억 원 고지를 돌파했습니다. 3호 기업은 안철수연구소가 기록했는데, 안철수연구소는 1999년 131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보안업계 최초로 100억 클럽에 가입한 기업입니다. 1990년대까지 국내에서 100억 원 고지를 넘은 기업은 한글과컴퓨터, 핸디소프트, 안철수연구소 3개 사에 불과했죠.

핸디소프트는 얼마 전 오리엔탈리소스로 사실상 전격 매각되었습니다. CI 출처는 핸디소프트 홈페이지


뿌리 깊은 불법복제와 단속의 숨바꼭질

법제도 정비와 단속을 통해 SW 기업들이 뿌리를 내렸으나 단속이 약화되면서 불법복제는 되살아났습니다. 1999년 다시 검찰의 대대적인 불법복제 단속이 시작되었고 5월에는 불법복제에 대한 첫 집단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죠. 마이크로소프트, 시만텍, 안철수연구소, 한글과컴퓨터, 트렌드마이크로 등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의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10개 사가 서울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SW 정품 구입 바람이 정부, 대학 연구소, 민간기업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긴급 예산을 확보, 정품 SW 구입에 나섰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소들은 3,000만~2억 원대의 긴급 예산을 편성하여 정품 SW를 구입했고요. 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전문용 SW의 경우 관련 업체와 협의를 거쳐 일단 정품을 공급 받아 사용한 뒤 차후에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구입 대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국내 10대 그룹의 평균 컴퓨터 프로그램 불법복제 사용률이 14%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지검 지적재산권 침해 사범 합동수사본부가 1999년 4월 한 달 동안 일제 단속을 벌인 결과 불법복제한 SW를 업무용으로 사용해 온 대기업 관계자 등 총 406명을 적발, 이 중 45명을 구속하고 258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검찰이 단속한 기관들을 대상으로 국내외 컴퓨터 SW 개발업체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랐습니다.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외 5개 SW 개발업체들이 검찰 단속에 적발된 부산의 성심외국어대, 부산 경상대, 한국전력과 인쇄업체 한 곳을 상대로 모두 6억 원 가량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저작권 침해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는데, SW 개발업체들이 대학과 공기업을 상대로 불법복제 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죠.

이를 통해 SW 불법복제의 성역이 없어졌습니다. 정부의 이 같은 단속 의지는 SW 불법복제 때문에 국내 유망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경영 위기에 봉착하는 등 불법복제가 한계 상황에 달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적재산권 침해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강력한 대처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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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내영아 2009/10/13 21:3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불법복제 참회합니다. ㅠ.ㅠ

  2. 컴퓨터공학과 학생 2010/07/02 02: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컴퓨터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장차 SW/ DBMS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있는데... 불법복제가 제발 근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3. swiss replica watches 2010/07/08 17: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 1호 매출 100억 기업으로 기록됐습니다?동시에 한글과컴퓨터는 최단 기간에 100억 원 매출을 돌파한 기업이기도 하고요?

  4. IT news 2011/02/08 07: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10/05 18:03
1992년 10월 한글과컴퓨터가 SW 불법복제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불법복제에 대한 법적 조치 등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이죠. 당시 SW 불법복제는 개발자의 창작 의욕을 말살시키고, SW 산업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었습니다. 100여 개에 이르던 국내 SW 개발업체 중 41%가 자본금 1억 미만의 영세업체였던 만큼 불법복제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사법당국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SW를 무단 복제해 판매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등 강력하게 대처하기 시작했죠, 그럼 그 현장으로 함께 달려가 볼까요?


1992년 말 90% 이상이 불법복제 – ‘소프트웨어보호대책반’ 결성

1990년대 초반, 용산 전자상가 컴퓨터 매장에서는 컴퓨터를 사면 5~6가지의 SW를 설치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기본 메뉴가 운영체계인 MS DOS, 바이러스 퇴치 백신, 윈도우, 자료 관리용 소프트웨어인 로터스, 그리고 워드프로세서 한글 등으로 아주 푸짐했죠. 이 밖에도 불법 SW는 PC 통신이나 사설 통신망인 BBS를 통해 확산되는 추세였습니다.

당시 ‘한글’ 프로그램의 사용자는 100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정작 판매된 것은 4만 개 뿐이었습니다. 또 1992년 말 기준, 국내에 소개된 SW는 7,000여 종으로 이 가운데 상품성을 가지고 유통되는 것은 800종 가량이었는데 90% 이상이 불법복제를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11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국내 15개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와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프트웨어 저작권 보호 대책반’을 결성했습니다. 대책반은 홍보 활동 및 세미나∙공문 발송, 고발센터 설립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불법복제를 근절시켜 나가기로 했죠. 1단계로 1992년 12월부터 1993년 초까지 홍보 활동을 전개, 사용자들의 인식 전환을 유도해 나가는 한편 1993년 7월부터 2단계 사업으로 법적 대응을 담당할 기구를 본격 가동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기업들이 대대적 방지 활동을 전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가 이처럼 ‘불법복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SW 불법복제가 업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횡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정부 차원에서는 SW 불법복제가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미국 등 선진국들의 산업재산권 보호 요청이 강력해짐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보호법 및 저작권법 개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습니다.

1993년 들어 과학기술처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한 벌금액을 최고 3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하고 복제품 사용자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을 마련, 입법 예고했습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발표 후 – SW 불법복제 첫 실형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1987년 7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발효된 이후 처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복제한 사람에게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1992년 10월 육군보통군사법원은 동서산업개발이 외국 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국내에 시판한 킹스 퀘스트, 인디아나 존스 등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 판매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모 씨(22∙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방위병) 에 대해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죄를 적용,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전씨는 입대 전 영맨소프트라는 소프트웨어 판매점을 차려놓고 동서산업개발의 컴퓨터 게임프로그램을 불법복제, 프로그램을 정품 가격의 5% 수준인 1개당 1,000~2,000원에 판매해 8,000여만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죠.

동서산업개발이 95년 내놓은 광개토대왕-_- 그 때는 나름 고사양을 요구했습니다.
출처는 동서게임채널 공식 홈페이지


1993년 4월에는 포스데이타가 국내에서 제작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 판매해 온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본사 사무실과 지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불법복제된 프로그램 디스켓 20여 장과 하드웨어 10여 개를 증거물로 압수했습니다. 또한 현대 전자산업의 전산과장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현대전자산업은 ‘한글 1.5’, ‘한글 2.0’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해 이를 회사 마케팅부 개인용 컴퓨터 53대에 입력, 사용해왔죠.


검찰이 대기업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중 단속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는 “검찰이 대학에도 압수수색을 벌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소문은 “불법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한 모대학 교수가 연행 구속됐다”는 식으로 연예인 열애설 마냥 번져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몇몇 대학에서는 복제 프로그램 지우기가 한창이었고 서울 용산 전자상가 500여 명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추방대회’를 열고 자체적으로 수거한 2.5톤 트럭 1대 분의 불법복제 디스켓 11만 장과 가정용 게임 프로그램 2만 개(시가 3억 5천만원)를 소각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불법 소프트웨어의 생산 유통을 담당하던 또 다른 축은 컴퓨터 학원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지검 김희재 검사는 중앙정보처리학원장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중앙정보처리학원은 1990년 4월부터 당시까지 자신의 학원 컴퓨터 1,000대를 이용해 한글과컴퓨터에서 개발한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아래아 한글’을 디스켓에 무단 복제한 뒤 수강생 4,950명에게 팔아 저작권자인 한글과컴퓨터에 1억 7천여만 원의 손해를 입혔습니다.

정말이지 요즘 말로 용자로군요-_-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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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 Magazine 2011/02/08 07: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09/28 22:01

1980년대 후반부터 꽃피운 PC 산업과 맞물려 1990년대는 소프트웨어의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저마다의 PC와 소프트웨어들이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지난 글에서 다룬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아래아한글’ 탄생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한글은 한 때 시장점유율 90%에 이를만큼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불법복제가 이처럼 잘 나가던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사면 끼워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은 국산 컴퓨터, 아래아한글에 이어 4편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사진은 최신 한글과컴퓨터 오피스, 출처는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나만의 홈페이지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 나모 웹에디터

1995년 설립된 나모인터랙티브는 1997년 나모 웹에디터 버전 1.0을 시작으로 1999년 3월 3.0을 출시했습니다. 웹에디터는 개인이 인터넷 상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홈페이지 저작툴이었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하듯 위지위그(WYSIWYG :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방식을 적용했다.

상식 : 위지위그란?
문서 편집 과정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것과 출력물이 동일하게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워드프로세서와 웹 편집기는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죠.

특히 나모 웹에디터는 해외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템플릿 마법사를 이용하면 5분만에 사이트 구축이 가능했는데, 이러한 요인들로 미국 정보통신 전문 웹진 씨넷으로부터 최우수 소프트웨어로 평가 받기도 할만큼 이름을 떨쳤습니다. 또한 나모 웹에디터의 독창적 기능이었던 수식 입력 기능, 다국어 입력 기능은 이 회사의 독자적인 기술로 199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은 인터넷 인구 증가와 함께 매년 4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모의 웹에디터 역시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과 마찬가지로 불법복제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두둥-_-......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사면 공짜로 주는 것

불법복제와 유통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다행히 1995년 76%에 달하던 불법복제율은 10년 사이 45%까지 줄어들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지만 여전히 선진국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죠.

시장 점유율 90%, 80%를 웃돌던 ‘아래아한글’과 ‘나모웹에디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산업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1차적으로는 불법복제의 탓이 컸습니다. 당시에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불법복제가 만연한 개인용 시장을 떠나 기업용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며, 또한 오늘의 SaaS와 같은 온라인 다운로드 판매 방식(ESD)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사용에 익숙한 이용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다운로드 받는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의 전산 담당자들은 소프트웨어 자산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온라인 구매 방식을 회피했습니다. 게다가 제품의 용량이 큰 오피스와 같은 제품은 온라인을 통해 다운로드받는 것에 한계가 있었죠. 2000년대 이전까지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사면 공짜로 주는 것으로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독자적인 상품으로 인식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건 다음 시간에. 저 퇴근해야 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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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Dust 2009/09/29 06: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소프트웨어가 마치 무료인양 인식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소프트웨어를 돈주고 사야한다면 놀라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을 모두의 탓이나, 특정 사람들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불법 복제의 온상이 된 주범을 밝혀야지요. 그것을 말하지 않고 이런식으로 글을 가져가시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참고로 제가 생각하는 주범은 당연히 정부와 대기업, PC 제조업체입니다. 거기에 용산도 추가되겠지요. 관공서와 대기업에서조차 불법 프로그램을 마구 사용하였으며, 특정 포맷 강요로 해당 관공서나 기업과 거래하는 업체는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강요/결국 불법 복제를 양산했으며, PC 제조업체에서도 특정 프로그램을 무료로 번들시키거나 컴퓨터 가격에 포함되지 않은 불법 프로그램을 깔아 판매하기도 했지요. 용산 조립업체는 말하나 마나고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써오거나, (모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복제를 하여 사용해 온 일반 국민이나, 일부 불법 복제 제품을 공유하거나 판매한 사람들은 그저 주변인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에는 직접 해킹하여 릴하는 릴그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정품 사용에 대한 인식이 높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제대로된(?) 해킹/릴 그룹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품 시디를 번들 시디로 정도밖에 생각안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불법 복제가 문제다. 불법 복제하는 놈들은 범죄자다. 그 범죄자들때문에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망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초창기에 좋은 거 다 빼먹고,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망한 업체들이 하는 소리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 당당~ 2009/09/29 15:21  address  modify / delete

      여기는 직장이 직장인지라 놀리지는 않지만;;;

      불법복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에 패미통에서 한국 용산 탐방기 만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들이 내린 답은 '습관'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복제는 당연히 만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 사실 선진국도 불법복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도 여전히 불법복제 문제에 당면해 있는 모습을 보자니 습관과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군요.

      이 글도 불법복제하는 분들이 '범죄자'라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요, 이제는 좀 나아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여하튼 어서 불법복제율이 좀 낮아졌으면 하네요 ㅠㅠ

  2. 스텔D 2009/09/29 14: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모 웹에디터..........

    그러고보니 추억의 제품이군요.

    초등학생이던 시절 홈페이지 경진대회 같은데 참가하려고 학교에서 만진 후에는....

    전혀 손을 안대다가, 최근에 필리핀에 컴퓨터 가르치러 갔을 때

    트라이얼 버전을 사용한 기억이...

    • 당당~ 2009/09/29 14:21  address  modify / delete

      정말 추억의 제품이죠. 요즘은 어지간한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웹편집기도 상당한 수준이라...

  3. 2009/09/29 15: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모웹에디터.. 버전 바뀌는 동안 2번의 책을 내고 쏠쏠하게 용돈벌이 했는데,
    웹 환경이 바뀌고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이제 안되네요. ㅎㅎ
    지금이야 환경이 바뀌어서 웹에디터가 개인들에게는 필요없는 툴이 되긴 했지만,
    그 당시 불법복제 문제 정말 심각하긴 했습니다.
    특히 나모나 한컴같은 경우는, 국산 업체이고 국민 정서를 건드릴 수 없어서
    강하게 정품을 사야한다고 주장하지도 못했었지요.. 어찌 생각하면 안타까웠어요.

    • 당당~ 2009/09/30 13:58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 시대의 흐름을 아주 잘 잡았군요. 그래도 두 권이나 집필할 정도면 다른 시장도 얼마든지 노릴 수 있을 것 같은에 ^^;

      사실 외산 업체도 고민이 많습니다. 반대로 남의 나라 돈 벌어줘서 뭐하냐는 인식도 있어서 말이죠-_-;

  4. 콘텐츠 개발자 2009/09/30 10: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바이러스 침투가 용이하다는 점이에요.
    디도스(DDoS)공격이 7월7일이니까 한 세달정도 되었는데, 다 잊은 듯하죠? ㅎㅎ
    정품 사용이 보안투자라고 생각하는 기업, 관공서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인식을 바꿀 계기가 없었다는 것 같아요. 돈없는 중소기업은 정부가 좀 도와주고 해서 불법복제로 인한 여러 문제가 좀 해결되면 싶네요..

    • 당당~ 2009/09/30 13:59  address  modify / delete

      아, 이 문제 정말 심각하죠. DDos에 대해 많은 분들이 벌써 잊어버린 듯해 아쉬워요. 관공서는 그래도 기본적으로 정품을 쓰기는 하는데, 오히려 정품/복제 개념이 없어서 복제를 그냥 쓰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

  5. links of london jewellery 2010/07/08 17: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사용에 익숙한 이용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다운로드 받는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 Information Technology Magazine 2011/02/08 08: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09/24 19:39
2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 2명 중 1명은 PC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 10명 중 7명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죠. 이러한 과정에서 국산 컴퓨터 회사들의 눈부신 발전이 하드웨어에서의 약진이었다면, 1989년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아래아한글’의 탄생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이었습니다. 1부 최빈국과 최첨단 IT의 숙명적 만남2부 소프트웨어 강국의 기반에 이어 3부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IBM PC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한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역사는 1967년 수립된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되었는데, 건국 이후 처음으로 컴퓨터에 대한 정책 의지를 담고 국가적 차원에서 최초로 관심을 표명한 것이죠.

한편 이 시기 처음으로 국산 컴퓨터가 선보였습니다. 1962년 8월 한양대 이만영 교수가 진공관을 연결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최초의 전자계산기를 만든 것이죠. 1963년에는 1호기를 개조해 대형 전자계산기로 업그레이드를 하기도 했습니다. 단 상용화되지 않았기에, 최초의 국산 컴퓨터로 공식 인정되는 컴퓨터는 1970년 카이스트가 미국 CTE의 후원을 받아 개발한  세종 1호기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는 SPC 공식 홈페이지


최초의 개인용 PC는 1981년 삼보컴퓨터(전 삼보전자엔지니어링)에서 개발한 트라이젬 SE-8001입니다. 이후 82년 애플 호환 기종 트라이젬 20을 내놓으며 애플 호환 기종들을 이끌었으나 80년대 말 이후, 애플 호환기종들은 IBM 호환 PC에 서서히 힘을 잃었습니다.

국내에서 IBM 호환 PC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입니다. 삼성전자가 ‘SPC-3000’을, 삼보는 ‘트라이젬88’을 내놓은 것이죠. 이어 인텔의 286과 386 프로세서를 사용한 PC가 차례로 출시됐습니다. 이렇게 춘추전국시대로 비유되는 1980년대가 IBM으로 통일되며 막을 내리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PC 산업은 인텔의 펜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한 IBM 호환 PC가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소프트웨어의 혁명이나 군계일학, 아래아한글의 등장!

198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한글의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소수 전문가 집단이 주도하는 컴퓨터 환경에서 한글은 철저히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컴퓨터 산업의 특성상 모든 프로그램과 명령어는 영어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용 프로그램들에 한글화 작업이 요구됐고 한글화가 안 된 소프트웨어는 현지화가 덜 된 제품이라 비난 받았죠. 하지만 한글은 2바이트 코드의 조합형 문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IT에서는 구현하기 힘들어서 국내에 컴퓨터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외국계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1989년 4월 ‘아래아한글 1.0’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올해로 20돌을 맞은 ‘아래아한글’은 리포트나 논문을 쓸 때 정말로 근사한 한글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한 젊은 대학생의 결심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업적으로 남았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현 드림위즈 사장인 이찬진씨인데요, 1988년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 4학년이던 이찬진 사장은 컴퓨터 연구회 동아리 후배였던 김형집, 우원식 씨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워드프로세서는 존재했습니다. 삼보컴퓨터의 ‘보석글’과 금성의 ‘하나워드’가 많이 쓰였었죠.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외국 프로그램을 한글화한 일종의 번안곡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 이찬진은 ‘아래아한글’이 탄생하자마자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생산과 유통, 판매를 ‘러브리컴퓨터’에 맡기고 수익을 50:50으로 나누어 번 돈 5,000만원으로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했습니다.

출처는 한글과컴퓨터 공식 홈페이지

1990년 설립된 한글과컴퓨터의 상승세는 거침 없었습니다. 1993년 매출 100억을 돌파했으며, 당시 워드프로세서 시장점유율은 90%를 넘나들었습니다. 창업 7년만인 1996년 주식시장에 장외 등록했을 때 주가가 10만원 대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4년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 선물 목록에도 포함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불법복제는 한글과컴퓨터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불법복제가 아니었다면 한글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래아한글’이 나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정품을 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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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Vivan Bak 2009/09/25 02:5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불법복제 때문에도 많은 손실을 입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느순간 소프트웨어가 발전이 별로 없어서 그다지 큰 수요를 내지 못한것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에 워드프로세서의 가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저냥 워드프로세서로 남아있더군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단일툴로서 한글을 이용하여 문서를 만드는데 한컴의 한글워드가 앞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피스툴 전체를 보아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비해 별로 였던게 큰요인인데다, 마소의 파일포맷만도 못한 타 소프트웨어간의 문서 호환성을 통해 고립한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겼습니다.

    아마 한글 97때가 가장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당당~ 2009/09/25 10:08  address  modify / delete

      여기는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이기에, 쿨럭 -_-;;;
      말씀하신 많은 부분에 동감합니다. 특히 호환성 문제는 많은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도 한컴 오피스도 보급량은 낮지만 비교적 좋은 평가를 얻고 있고, 씽크프리도 상당히 기대되는지라 3차전이 기대되네요 ^^

  2. Mr.Dust 2009/09/26 07: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래아한글의 발목을 잡은건 불법 복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법 복제를 조장"한 면이 있으면 모를까요. 아래아한글이 잘나갔을 때, 한글과 컴퓨터가 정품 사용에 대한 홍보 등 공익 사업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요? 불법 복제가 문제가 아니라, 불법 복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글과 컴퓨터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네요.

    여튼 윗분과는 조금 다르면서 같은 의견. 아래아한글은 97 이후 특별한 발전이 없었고, 이후에는 단일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미 워드프로세서를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워드프로세서의 개념이 형식(표)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넘어가자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윗분 말씀대로 워드프로세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오피스군을 성공시켰어야 했는데, 오피스군이 성공하지 못하자, 기능적으로 워드프로세서를 뛰어넘어 DTP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아래아한글에만 집착하다 주저 앉았다고 해야할까요. 폐쇄 포맷과 힘(돈, 권력)으로 시장을 장악한 MS의 방식을 뒤따르긴 했으나, 국내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국내 안에서 주저 않은 케이스죠.

    • 당당~ 2009/09/29 14:24  address  modify / delete

      아래아한글이 불법복제를 '조장'까지 했다고 보기는 뭐하겠죠. 사실 그 시절에는 정품이나 불법복제에 대한 감각 자체가 전혀 없던 정도였으니-_-; 공디스켓 돌려가며 copy 명령어를 두들긴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한글이 변화에 좀 늦은 점은 저도 아쉽습니다. 허나 어찌 보면 국산 소프트웨어가 한 때나마 시장을 장악했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적으로는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여하튼 한글과컴퓨터의 이후 행보는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

  3. links of london charms 2010/07/08 17:4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IBM PC?

  4. Information Technology Magazine 2011/02/08 0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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